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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1고대 그리스신, 올림푸스 12신
- 2017.12.01해학이 있는 조선시대 점술
- 2017.12.01달성서씨 유허비
- 2017.12.01구암서원 숭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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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가문/상식'에서 yoojin 작성 함
사라진 고대 문명 중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 역사는 언제나 신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시각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 전설 속에 나오는 신들은 모두 괴상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신들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경외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둘 중 일부는 일반 사람보다 더 왕성한 생명력을 가졌거나 더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모든 욕망과 감정을 쉽게 표현하고 강한 전투력을 보이며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다.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봤을 그리스 신들에 대하여 알아 보겠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계보
고대 그리스 신화나 전설을 보면 신은 구(舊)신과 신(新)신으로 구분된다.
구신 계보의 전설을 보면 우주는 원래 카오스 상태에서 대지의 신 가이아(Gaia)가 생겨나고 가이아는 또 우라노스(Ouranos)를 낳고 그 후 하늘과 땅이 서로 결합하여 12명의 티탄(Totan)을 낳았다. 12명의 티탄 중에서 크로노스만이 우라노스의 통치에 반발하여 자신이 만신의 주인임을 자처했다.
이러한 크로노스도 자신의 통치권을 넘보는 사건이 발생할까봐 자식들을 엄격하게 돌보고 자식들이 태어날 때 모두 삼켜버렸다. 그러나 크라노스의 아내는 아들 중 하나인 제우스를 빼돌렸다. 제우스가 성장한 후 온갖 방법을 동원해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킨 자식들을 다시 토해 내게 하였다.
제우스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힘을 합해 크로노스가 이끄는 티탄들과 대항해 마침내 그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제우스는 마침내 제3대 최고의 신에 올랐다. 신신의 계보에서 주인공은 구긴인 크로노스를 물리친 제우스와 그의 동료 그리고 후배들이다. 그들은 올림푸스 산에 살았기 때문에 '올림푸스의 신들'이라고도 불린다. 신신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12신으로 묘사된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 신들의 여왕인 헤라, 태양의 신 아폴론, 달의 신 아르테미스, 지혜의 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레스, 신의 전령 헤르메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죽음의 왕 하데스이다.
올림푸스의 12 신들
제우스는 신들의 제왕으로 지고지상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한손에는 권력의 지팡이와 다른 한손에는 승리의 여신을 받치고 있다. 제우스는 인간 세상의 질서와 법률을 결정할 수 있으며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지배한다. 제우스의 무기는 벼락이고, 아무도 그의 위력에 저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위엄과 위력에 걸맞지 않는 것이 바로 바람기와 관련된 신화들이다.
헤라는 바람기 많은 남편 제우스 때문에 질투심이 강한 여인이 되었다. 헤라는 원래 제우스의 누나이다. 원시사회에서는 근친결혼이 가능했기에 헤라는 제우스의 아내가 되었다. 헤라는 결혼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에 기혼여성을 보호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헤라는 자신의 결혼생활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는 빛과 청춘, 의약, 목축, 음악, 시가 등 생명과 열정이 담긴 사물들을 주관했고 사람들에게 제우스의 예언과 지시를 전달했다.
달의 신 아르테미스는 아름다운 여인이자 사냥의 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항상 활을 등에 매고 붉은색 사슴과 함께 숲 속을 누볐다. 하늘에 떠 있는 조작달이 바로 그녀의 활 모양을 하고 있다. 한번은 아르테미스가 한 젊은이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저녁에 대지를 밝게 비추는 달을 띄우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 아폴론은 동생의 시력이 안 좋다는 것을 이용해 멀리에 있던, 동생이 사랑하는 젊은이를 가르키며 야수라고 했다. 이 말에 속은 아르테미스는 그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 후 아르테미스는 크게 상심했고, 그때부터 달은 온기도 없고 생명도 없는 것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테나는 제우스와 지혜의 여신 메티스의 딸이다.
메티스가 아테나를 임신했을 때 제우스에게 자신이 제우스보다 더 똑똑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제우스는 뒷일이 걱정되어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제우스의 머이가 깨질 듯 아파왔다. 그래서 제우스를 머리를 가르자 완전무장한 여신이 나왔는데 바로 제우스의 용맹과 메티스의 지혜를 물려받고 태어난 아테나였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물거품에서 태어나 서풍을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왔는데 발아래에 생화가 가득 피어났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은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사람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링크]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글을 보면 피그말리온에 대한 얘기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판도라의 상자에 얽힌 얘기다.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 세상에 가져다주자 제우스는 인간에게 더 큰 재난을 주어 불이 가져다 준 이익을 상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헤파이스토스는 판도라를 아름다은 미녀로 만들었고 아테나는 그녀에게 은백색의 옷과 화환을 만들어 목에 걸어주었다. 헤르메스는 그녀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었고 아프로디테는 교태를 부리는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유해한 것들을 상자에 담아 주었다.
판도라가 인간 세상에 내려오자 그녀를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판도라 상자를 열자, 모든 불행과 재난과 질병이 인간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고, 인간은 더 이상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에는 재난의 근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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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가문/상식'에서 yoojin 작성 함
2012 대선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맘때쯤 정치인들은 유명 점쟁이를 찾는다고 한다.
점쟁이의 말을 100% 믿는 건 아니겠지만 꼭 선거철이 되면 유명세를 타는 쪽집게 점쟁이가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여러 명의 점쟁이들의 말 중에 누군가는 맞추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확률적으로 봐도 로또보다는 쉬울 것 같다.
유명한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예언서인 <백시선, 영어로 번역되어 '모든세기들'이라고도 함>은 1555년부터 3797년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대규모 재난(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등등)을 예언한 책인데, 실제로 4행시로 되어 있는 원본의 내용보다는 이를 임의적으로 해석한 해설서들의 풀이가 더 다양하다.
어릴 적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책을 읽고(정확히는 해석서를 읽은거지만) 무척이나 감탄한 기억이 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그리고 9/11 테러(이는 요근래 주장하는 내용임)가 정확히 예언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모두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야 인지된 것이며, 그나마도 억지로 끼워 맞춘 내용에 불과하다는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지난 수백 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대중적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강력한 호기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21일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마야 예언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유명 점쟁이를 찾아 미래에 대해 알아보려는 심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박빙의 경쟁을 하는 선거판이라면 평소 점술을 믿지 않던 사람이라도 불안한 마음에 점쟁이를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점쟁이들의 신통력은 노스트라다무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단했던거 같다. 특히 조선시대 점쟁이의 점괘는 지금들어도 신통력이 대단했던거 같다.
이번 글에서는 신통력은 물론 해학도 있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점술 이야기를 알아 보겠다.
해학이 있는 조선시대 점술
고대 유럽의 경우 별자리를 관찰하여 보는 점성술(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점성술을 기반으로 함)과 동물의 내장을 이용하는 내장점 그리고 펼친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장으로 점을 치는 개전점이 주를 이루지만, 우리나라의 점술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주로 글자로 점을 치는 파자점(破字占)이 많이 행해졌다.
이번에는 옆에 있던 거지가 신분을 위장하여 같은 문 자를 짚자 점쟁이는 망설이지 않고 점괘를 내 놓았다.
"문(門) 앞에 입(口)이 하나 달렸으니 남의 집 대문을 찾아다니며 빌어먹을 팔자다!"
반대로 임금이 신분을 감춘 채 점쟁이에게 자신의 운을 물은 적도 있었다.
임금이 짚은 것은 왕(王) 자였는데 점쟁이의 점괘는 다음과 같았다.
"임금 왕(王)은 곧 땅(土) 위에 오직 한 사람(一)만이 있는 형국이니 기필코 임금이 될 운세로다!"
이번에도 거지가 같은 글자를 짚었는데 점쟁이는 명쾌하게 그의 운세를 일러주었다.
"길(土) 위에 사람이 한 일(一) 자로 길게 누운 꼴이니 앞으로 길에서 얼어 죽을 팔자다!"
위에 얘기가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는 일화로 조선시대 점술이 생활 속에 일상으로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점괘도 파자점을 통해 얻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술은 조선후기에 와서도 여전히 사람들과 밀접한 생활에 일부분이었다.
"밭 전(田) 자는 어(魚) 자에 머리와 꼬리가 없는 것이니 도마에 오를 물고기 팔자고, 갑(甲) 자에 다리가 없는 것이니 군사력이 약해지며, 입(口)이 열 십(十) 자에 싸여 네 개의 입(口)을 만든 것이니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이처럼 글자로 풀이하는 점술은 양반가나 왕실에 널리 유행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파자점은 민간에도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파자점이 점술에만 이용된 것은 아니다.
민간에 유행한 파자점은 남녀간의 사랑의 메세지로도 응용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묻어보자 총각은 다음과 같이 풀이 해주었다.
"적(籍)을 하나하나 풀어보자면 제일 위에 있는 글자는 대나무(竹) 밭을 뜻하는 것이오, 왼쪽은 오라는(來) 뜻이지. 그리고 오른쪽의 석(昔)은 열 십(十) 자가 2개에 한 일(一)자가 받침으로 있고 그 아래 날 일(日)이 있는 것이니 결국 '21일(二十一日)에 대나무 밭으로 오라'는 말이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조선시대의 점술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사냥과 농사 그리고 천재지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이용되었다. 점술의 목적이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추리하고 예측하는데 있다지만 조선시대의 점술은 서민들의 일상 생활 자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술 자체로만 보아도 현재보다는 단순했던 시대였기에, 점쟁이의 점괘가 그만큼 신통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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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가문/달성서씨'에서 yoojin 작성 함
달성공원(達成公園)은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달성이라는 이름은 옛날 대구를달구벌(達句伐), 달구불(達句火), 달벌(達伐), 달불(達弗)이라 표기한데서
비롯되었는데 높은 평지, 부락, 도성의 뜻인데 부근의 각종 출토물로 보아서 이곳이 선사시대부터
부족국가를 이루고 자연적 구릉을 이용하여 그 위에 토성을 쌓은 성지(城趾)였다.
또 고려 때부터 달성 서씨(達成 徐氏)의 세거지였으나 조선조 세종때 나라에 헌납하였고 임진왜란 와중인
선조 29년1596), 경상좌우도가 통합되면서 경상감영이 되기도 하였다.
건립:1971. 3. 22.
연대:고려중엽 정종(1035∼1406)때 봉군제에 따라 달성서씨 세거지로 사유가 되었던 달성을 조선세종 때 성지로
필요하여 조정에조건 없이 양도하고 그후 세거지기념으로 세운비 (건립자 : 달성서씨 대종회.)
* 유허비 (遺墟碑) 란?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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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가문/달성서씨'에서 yoojin 작성 함
종목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
명칭 : 구암서원숭현사 (龜岩書院崇賢祠)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82.03.04
소재지 : 대구 북구 연암공원로 17길20(산격동)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달성서씨대종회
관리자(관리단체) : 달성서씨대종회
구계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이다.
서침은 고려말∼조선초의 변혁기에 향촌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다.
구암서원은 현종 6년(1665) 세웠고,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그 후 1924년 유림이 다시 지었다. 신명여고 운동장 오른쪽 언덕 아래에 북동쪽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경앙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유허비각이 있고 맞은편에 강당이 있다.
숭현사는 강당 바로 뒤에 3m쯤 떨어져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암서원 숭현사는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 안에 있을 뿐 아니라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 추가 내용 -
구암서원은 1665년(현종 6년)에는 연구산에 있었으나 이후 1675년(숙종 원년) 3월 29일 유림에서 구계 서침(徐沈)선생을 봉안(奉安)하고 매년 제사 지내다가 1718년(숙종 44년)에 대구시 중구 동산동으로 이건(移建)한 것이다. 구계 서침은 세종이 달성 서씨 세거지로 사용하는 달성(현 달성공원)의 지형이 두형같고 주위가 천연적으로 높은 성벽으로 이루어 명승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남산고욕기와 바꾸도록 하는 한편, 대대로 세록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사양하자 서침의 뜻에 따라 대구 지방 일대에 거둬들인 환곡의 이자를 감해 주기로 하였다 한다. 이에 은덕을 입은 대구지방 영남유림들이 서침의 송덕을 기리기 위하여 구암서원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구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24년 유림에서 다시 세우고 1943년 숭현사와 강당을 증수(增修)하였다. 그후 숭현사는 대구지방문화재 건조물 제2호로 지정되어 수차례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1995년도에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산79-1번지 연암공원내로 이건(移建)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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