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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서씨


시조 서 진(徐晋)은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서기준과 손자 서 영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대대로 달성에 살면서 달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다.
시조의 증손 서균형은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간관(諫官)을 지냈다. 당시 신돈의 횡포를 탄핵하는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아들 서 침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조선이 개국한 후 조봉대부로 전의소감을 지냈다.
서 침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서문한은 승사랑으로 광흥창 부승을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다. 차남 서문간은 중시에 올라 역시 현감을 역임했다. 막내 서문덕은 이조정랑과 만경현감을 지냈다.
가문의 기반을 닦은 인물은 조선 초기의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그의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며 양촌 권 근의 외손이다. 그는 세종 26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종 때까지 6대 왕조 45년에 걸쳐 6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다. 서거정의 형 서거광의 현손(손자의 손자)인 서 성은 다섯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서경우는 우의정에 오르고, 넷째 아들 서경주는 선조의 딸 정신옹주와 결혼한다. 둘째 아들 서경유의 증손 서종제의 딸은 영조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서경주의 자손이 가장 번성하였다.
충무공 이순신 막하의 선봉수문장 서수천은 대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노량해전에서 무공을 떨쳤다. 서병오는 서화에 탁월하여 한말에‘팔능(八能)’으로 일컬어졌다. 서상일은 독립운동가로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영친왕 결혼식전에 참석했던 총독부 요인과 이완용 등의 살해를 기도하다 잡힌 서상한(서상일의 아우)도 명성을 떨쳤다.
현대 인물은 서정희(제헌국회의원), 서우석(제헌국회의원), 서돈각(경북대총장), 서성택(국민대재단 이사장), 서정상(우석대 이사장), 서익원(대구고검 차장검사), 서경석(외무부기획관리실장), 서민석(동일방직사장), 서정한(한국합금철회장, 기독실업인 회장), 서갑석(한국리스 회장), 서명원(충남대총장), 서영호(재일대판거류민단장), 서정국(서울고검검사장), 서정식(경전전무), 서원석(기업은행전무), 서형석(대우 전무), 서이석(경기은행 수원지점장), 서정철(예비역 육군준장), 서정학(예비역육군준장), 서정화(내무부장관), 서정신(법무부 차관), 서병찬(조흥은행장, 기업은행장, 금융통화운영위원), 서청원(국회의원), 서석재(국회의원), 서종열(국회의원), 서상목(국회의원), 서상철(동자부장관), 서영훈(국무총리), 서종철(국방장관), 서일교(대법관), 서윤홍(대법관), 서석준(상공부장관), 서항석(극작가), 서정주(시인), 서기원(소설가), 서정길(천주교 대구교구대주교)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한편 이 명단은 대구서씨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항렬자는 20世 열(烈), 21世 규(圭) 곤(坤) 규(奎), 22世 진(鎭) 석(錫) 현(鉉), 23世 수(洙) 영(泳) 윤(潤), 24世 상(相) 동(東) 춘(春), 25世 교(敎) 병(丙) 병(炳), 26世 보(輔) 정(廷) 규(圭), 27世 덕(德), 28世 (水변), 29世 (木변), 30世 (火변)이다. 주요파는 현감공파, 학유공파, 판서공파, 감찰공파, 진사공파, 생원공파, 진사공파, 참판공파, 종사랑공파 등 9파가 있다.
본관 달성(達城)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별호로 삼한시대에는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렀다. 6세기 경에는 신라에 귀속되었다.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초기에 위화군(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일대)과 달구화현(달구벌)으로 나뉘어 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위화군은 대구현(大丘縣)으로, 다사지현은 하빈현(河濱縣),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 추량화현은 현효현(玄驍縣), 치성화현은 해안현(海安縣)으로 각각 바뀌었다. 대구현은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 : 星州)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승격하기 시작했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영조 때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변경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대구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대구부의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이 대구부로 독립하고 옛 대구부의 일부와 현풍군의 일부가 통폐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1938년 달성군의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고,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편되었다. 1981년에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달성과 지명이 같지만 달성서씨(達城徐氏)와 대구서씨(大丘徐氏)는 시조를 달리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 뿌리도 다르다. 한편 오늘날 대구 지명은 큰대(大), 땅이름구(邱)를 써서 대구(大邱)가 맞다. 그런데 대구서씨(大丘徐氏)의 대구는 큰대(大), 언덕구(丘)를 쓰고 있다. 이렇게 한자가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붙여진 이름은 바로 대구현(大丘縣)으로 원래 한자로 대구(大丘) 였다. 그 뒤 조선 영조 때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바꾸었다. 한글 이름은 똑같고 한자 이름만 바뀐 것이다. 오늘날 대구서씨는 한자로 대구서씨(大邱徐氏)가 아니라 대구서씨(大丘徐氏)가 맞다.
한편 달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달성구씨(達城具氏), 달성김씨(達城金氏), 달성배씨(達城裵氏), 달성서씨(達城徐氏), 달성성씨(達城成氏), 달성손씨(達城孫氏), 달성수씨(達城洙氏), 달성우씨(達城禹氏), 달성은씨(達城殷氏), 달성정씨(達城丁氏), 달성최씨(達城崔氏), 달성하씨(達城夏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좌삼마을, 경남 양산시 매곡동, 경남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경남 양산시 동부동, 경북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 경남 창원시 북면 외산리 현도마을, 전남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득실마을, 전남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전남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대곡마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전남 여수시 화장동 화산마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차동마을, 전남 여수시 상암동 진례마을, 전남 여수시 소라면 복촌마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웅서마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시목마을, 경남 고성군 영오면 오동리, 경북 상주시 공성면 평천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조산리, 경북 안동시 수하동,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사일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경북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충북 청원군 북이면 장재리 등이다. 경북 칠곡군 관내에는 2000년 현재 380여 가구 1,270여 명이 살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56명이 있다. 문과 36명, 무과 7명, 사마시 13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달성서씨는 1985년에는 총 94,873가구 398,363명, 2000년에는 총 132,270가구 429,35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만8천여 가구,3만1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80,434명, 부산 46,521명, 대구 35,298명, 인천 11,759명, 경기 39,513명, 강원 11,484명, 충북 12,385명, 충남 24,351명, 전북 20,566명, 전남 22,680명, 경북 39,572명, 경남 52,659명, 제주 1,121명이다. 경남, 부산, 경북, 대구 지역 등 영남권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77,562명, 부산 46,637명, 대구 40,468명, 인천 19,204명, 광주 5,442명, 대전 10,804명, 울산 14,127명, 경기 70,228명, 강원 9,243명, 충북 12,335명, 충남 14,303명, 전북 16,357명, 전남 15,145명, 경북 34,732명, 경남 41,361명, 제주 1,40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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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달성서씨문 세거내력




 정의]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득선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달성서씨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달성군(達成君)에 봉해지고 서씨 성을 받은 서진(徐晋)을 시조로 한다. 서진의 후손은 7세손 때 서제(徐濟)를 파조로 하는 현감공파(縣監公派),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 서섭(徐涉)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서근중(徐近中)을 파조로 하는 감찰공파(監察公派)로 갈렸고, 이후 세계를 이어 오면서 다시 분파되었다.

[입향경위]

달성서씨 여수 입향은 명종 때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순천에서 살던 서득선(徐得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에 세거할 자리를 잡았다 한다.

 그 뒤 인조 때 판서공파 서섭의 후예 서세남(徐世南)·서윤오(徐潤五) 형제가 대구에서 화양면 창무리에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뒤 효종 때에는 현감공파 서제의 후손 서의상(徐儀尙)이 역시 대구에서 소라면 죽림리에 정착했다.

또,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현손 서익성(徐翊省)이 통덕랑까지 지낸 뒤 율촌면 조화리로 옮겨 와 초야에 묻혀 살았다. 

숙종 때는 시조의 13세손 서계립(徐繼立)·서후기(徐後耆) 부자가 웅천동 웅서마을에 자리를 잡았으며,

영조 때는 서사룡(徐思龍) 대구에서 상암동 진례마을로 옮겨 살았으며, 서명선(徐命善) 순천에서 소라면 복촌마을로 이거했다.

[현황]

최초 입향자 판서공파 서세남·서윤오의 후손들은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소라면 복산리 대곡마을을 비롯하여 시내와 삼일동에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다. 

현감공파로서 소라면 죽림리에 입향한 서의상의 후손들은 화장동 화산마을 소라면 죽림리 차동마을 등에 분산되어 큰 문중을 이루고 있다.

서계립의 후손들은 웅서마을 시목마을에 분가하여 터전을 닦고 살다가 신도시가 조성됨에 따라 분산되어 주거하고 있다. 

서익성의 후손들은 현재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득실마을에 살고 있다. 

또, 서사룡의 후손들은 현재에도 상암동 진례마을에 30여 호가 세거하고 있다.

[관련유적]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득실마을 화곡사(禾谷祠)가 있다. 

화곡사 면암 최익현의 문하생으로 마을에 청추당(廳秋堂)을 지어 놓고 시인묵객들과 교류하면서 일생을 보낸 호조참판(戶曹參判) 서병두(徐丙斗)를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서씨 문중에서 1939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출처] 시조 서진|작성자 담덕

제목: 정복규의 성씨순례

(17)달성서씨(達城徐氏)-429,353

 

 시조 서진(徐晋)은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서기준과 손자 서영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대대로 달성에 살면서 달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다. 

한편 대구서씨와는 지명만 같을 뿐 뿌리가 다르다.

시조의 증손 서균형은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간관(諫官)을 지냈다. 

당시 신돈의 횡포를 탄핵하는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아들 서침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조선이 개국한 후 조봉대부로 전의소감을 지냈다.

서침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서문한은 승사랑으로 광흥창 부승을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다. 

차남 서문간은 중시에 올라 역시 현감을 역임했다. 

막내 서문덕은 이조정랑과 만경현감을 지냈다.

 가문의 기반을 닦은 인물은 조선 초기의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그의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며 양촌 권근의 외손이다. 

그는 세종 26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종 때까지 6대 왕조 45년에 걸쳐 6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다. 

서거정의 형 서거광의 현손(손자의 손자)인 서성은 다섯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서경우는 우의정에 오르고, 넷째 아들 서경주는 선조의 딸 정신옹주와 결혼한다. 

둘째 아들 서경유의 증손 서종제의 딸은 영조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서경주의 자손이 가장 번성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의 선봉수문장 서수천은 대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노량해전에서 무공을 떨쳤다. 

한말에 와서는 서화에 탁월하여‘팔능(八能)’으로 일컬어졌던 서병오와 독립운동가로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서상일이 있다. 

영친왕 결혼식전에 참석했던 총독부 요인과 이완용 등의 살해를 기도하다 잡힌 서상한(서상일의 아우)도 명성을 떨쳤다. 

 현대인물은 서정희(제헌국회의원), 서우석(제헌국회의원), 서돈각(전 경북대총장), 서성택(국민대재단이사장), 서정상(전 우석대이사장), 서익원(대구고검차장검사), 서경석(전 외무부기획관리실장), 서민석(동일방직사장), 서정한(한국합금철회장, 기독실업인회장), 서갑석(한국리스회장), 서명원(전 충남대총장), 서영호(전 재일대판거류민단장) 등이 있다. 


서울고검검사장을 지낸 서정국씨와 경전전무를 지낸 서정식씨는 형제간이며, 서원석(기업은행전무), 서형석(대우전무), 서이석(경기은행수원지점장)씨는 서정식씨의 세 아들이다. 

서정철(예비역육군준장), 서정학(예비역육군준장), 서정화(전 내무부장관), 서정신(법무부차관)도 형제간이다. 

조흥은행장, 기업은행장과 금융통화운영위원이던 서병찬씨가 삼촌이다. 

국회의원은 서청원, 서석재, 서종열, 서상목씨 등이 있다. 

서상철(전 동자부장관), 서영훈(전 국무총리), 서종철(전 국방장관), 서일교(대법관), 서윤홍(대법관), 서석준(전 상공부장관)도 후손이다. 

극작가 서항석씨,‘국화옆에서’의 서정주, 소설가 서기원, 천주교 대구교구대주교 서정길도 문중인물이다.(무순, 전 현직 구분 안됐음) 

 항렬자는 20世 열(烈), 21世 규(圭) 곤(坤) 규(奎), 22世 진(鎭) 석(錫) 현(鉉), 23世 수(洙) 영(泳) 윤(潤), 24世 상(相) 동(東) 춘(春), 25世 교(敎) 병(丙) 병(炳), 26世 보(輔) 정(廷) 규(圭), 27世 덕(德), 28世 (水변), 29世 (木변), 30世 (火변)이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 좌삼마을은 달성서씨 집성촌이다. 

현재 이 마을은 양산에서 가장 많은 달성서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달성군 서진의 8세손이자 감찰공파인 서의손(徐義孫)이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곡성현감으로 있을 때인 1531년(중종 26) 복성군 옥사에 연루되어 화가 미칠까 두려워 이곳에 은거하여 정착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서의손의 증손인 서중룡(徐仲龍)이 출정하면서 가족들을 이곳에 피난시켜 이주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 간 뿌리를 내렸다. 

경남 양산시 매곡동, 경남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경남 양산시 동부동도 집성촌이다. 매곡 지역은 임진왜란 무렵 서몽호가 울산으로부터 와서 이곳에 살았다. 

답곡 지역 달성서씨들은 공조참의 서두조(徐斗祚)의 후손이다. 

 경북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에도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입향조는 조선 후기 서순조(1684-1730)이다. 2000년 현재 380여 가구 1,27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경남 창원시 북면 외산리 현도마을도 집성촌이다. 

입향조 서사일이 약 350년 전에 호란을 당하여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북면 마산리와 대방동에도 집성을 이루었으나 대방동은 창원공단지구 개발로 인하여 이주하면서 흩어져 버렸다.

 전남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도 집성촌이다. 

입향조는 조선 명종 때 서득선이다. 

그 뒤 서사원의 현손 서익성이 통덕랑까지 지낸 뒤 이곳으로 옮겨 와 초야에 묻혀 살았다. 

서익성의 후손들은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득실마을에 살고 있다. 

인조 때 판서공파 서섭의 후손인 서세남, 서윤오 형제들은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와 소라면 복산리 대곡마을 등에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다. 

현감공파로서 소라면 죽림리에 입향한 서의상의 후손들은 화장동 화산마을과 소라면 죽림리와 차동마을에 살고 있다.

 숙종 때 시조의 13세손 서계립, 서후기 부자는 웅천동 웅서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효종 때에는 현감공파 서제의 후손 서의상이 소라면 죽림리에 정착했다. 

영조 때 서사룡이 상암동 진례마을로 옮겨와 현재 30여호가 있다. 

서명선은 소라면 복촌마을, 서계립의 후손들은 웅서마을과 시목마을에 분가하여 터전을 닦고 살았으나 신도시 조성으로 분산됐다. 

 관련 유적은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득실마을에 화곡사(禾谷祠)가 있다. 

면암 최익현의 문하생으로 마을에 청추당(廳秋堂)을 지어 놓고 시인 묵객들과 교류하면서 일생을 보낸 호조참판 서병두를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서씨 문중에서 1939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그밖에 달성서씨 집성촌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 오동리, 경북 상주시 공성면 평천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조산리, 경북 안동시 수하동,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사일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경북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충북 청원군 북이면 장재리 등이다.

 주요파는 현감공파, 학유공파, 판서공파, 감찰공파, 진사공파, 생원공파, 진사공파, 참판공파, 종사랑공파 등 9파가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56명이 있다. 문과 36명, 무과 7명, 사마시 13명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429,353명이다. 서울 77,562명, 부산 46,637명, 대구 40,468명, 인천 19,204명, 광주 5,442명, 대전 10,804명, 울산 14,127명, 경기 70,228명, 강원 9,243명, 충북 12,335명, 충남 14,303명, 전북 16,357명, 전남 15,145명, 경북 34,732명, 경남 41,361명, 제주 1,405명이다.

 본관 달성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별호다. 

삼한시대에는 달구화 또는 달구벌이라 불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하여 수창군(壽昌郡)에 속하였다. 조선 영조 때 구(丘)를 구(邱)로 고쳐 대구(大邱)라 하였다.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 정복규: 성씨 전문기자, 성씨 전문강사 )

 jungboky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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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일보/통일신문/충청일보/호남매일/전북매일/전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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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V 전주방송 TV특강 < 행복플러스 >

   제1강의- 유머있는 자녀로 키워라

   제2강의- 충전형 인간과 방전형 인간

● 통일부 남북통일 전문강사

   통일부 인터넷방송 < 북한지역 본관성씨 >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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